1. 1,300년의 기다림, 자연이 빚어낸 ‘슈퍼 인류’
먼저 아주 먼 과거로부터 온 살아있는 진화의 증거를 만나봅시다. 우리나라 제주도 바다에는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맨몸으로 거친 파도를 가르는 ‘해녀’들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분들의 초인적인 능력에 주목해왔습니다. 산소통 하나 없이 깊은 바닷속에서 몇 분씩 숨을 참으며 전복을 따는 해녀들의 몸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연구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해녀들의 몸은 일반인과 다르게 반응합니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심장박동은 느려지지만, 뇌와 심장 같은 핵심 장기로 가는 혈류량은 오히려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몸 스스로가 산소를 아끼기 위해 혈관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것이죠. 놀라운 점은 이것이 단순히 훈련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주 해녀들에게는 이완기 혈압을 조절하는 특정 유전자 유형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나타났습니다.
무려 1,3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차가운 바다 환경에 적응하며, 자연이 서서히 그들의 DNA를 ‘물질에 최적화된 상태’로 빚어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연 진화’입니다. 환경이 인간을 선택하고, 인간은 아주 천천히 그에 맞춰 몸을 바꿔온 것이죠.
2. 시간의 지름길을 찾아서: 진화의 속도위반
그런데 현대의 인류는 이 1,300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릴 인내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유전자 가위라는 도구를 들고 진화의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난모양 적혈구병’ 남매의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아프리카처럼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지역에서는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변하는 유전적 변이가 생겼습니다. 왜일까요? 역설적이게도 말라리아 기생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였습니다. 적혈구 모양을 바꿔 기생충이 살기 어렵게 만든 것이죠. 하지만 이 변이는 극심한 통증과 합병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과거라면 이 병을 안고 평생을 고통받았겠지만, 남매는 유전자 교정 치료를 받았습니다. 1,300년이 걸릴지도 모를 유전적 수정을 단 몇 주 만에 실험실에서 끝내버린 것입니다. 이제 인류는 환경에 의해 ‘선택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코드를 수정해 환경을 ‘극복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공 진화’의 시작입니다.
3. 트랜스휴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종의 탄생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우리는 ‘트랜스휴먼(Transhuman)’이라는 낯선 개념과 마주하게 됩니다. 트랜스휴먼이란 과학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인간 이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존재를 말합니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장면 중 하나는 ‘인핸스드 게임(Enhanced Games)’입니다. 올림픽과는 정반대로, 여기서는 약물 복용이나 유전자 증강 기술 사용이 금지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술을 써서 인간이 얼마나 빨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자!”라고 외칩니다. 은퇴를 고민할 나이인 32세의 수영 선수 크리스티안은 약물의 도움을 받아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우리는 묻게 됩니다. “이것을 공정한 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이 선수를 여전히 우리가 알던 ‘보통의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술로 근육을 강화하고, 유전자로 지능을 높이며, 노화를 멈춘 존재. 이들은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새로운 종일지도 모릅니다.
4. 진화의 칼자루, 우리는 어디를 향해 휘두를 것인가?
제주 해녀의 유전자가 ‘생존을 위한 자연의 배려’였다면, 트랜스휴먼의 유전자는 ‘욕망을 위한 인간의 설계’입니다. 인류는 이제 진화라는 거대한 배의 키를 직접 잡았습니다. 우리는 질병이라는 암초를 피해 더 건강하고 강력한 미래로 항해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인간다움’이라는 본질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바다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누군가는 더 오래 살기 위해 유전자를 편집하는 시대. 1,300년 동안 해녀의 몸을 묵묵히 바꿔온 자연의 섭리 대신, 우리는 단 몇 번의 주사로 유전자를 바꾸는 ‘마법’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칼자루를 쥔 사람은 그 칼에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진화에 개입하기 시작한 지금,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과연 어디일까요? 단순히 더 강하고 더 똑똑한 생명체가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고통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일까요? 진화의 칼날 끝에 놓인 질문은 이제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도덕성’을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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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선택vs인공진화 : 1,300년의 해녀 진화와 몇 주 만의 유전자 교정 비교
트랜스휴먼 : 기술을 통해 신체 능력을 증강한 포스트 휴먼
유전자증강 : 질병 치료를 넘어선 능력 강화(스포츠 도핑 등)의 논란
인간다움 : 진화의 주도권을 쥔 인류가 직면한 철학적 질문
생존최적화 : 환경에 적응하는 유전적 변화의 원리
<기분좋은 플레이리스트 들어 보아요>